치솟는 메모리 가격과 공급 절벽
삼성전자가 DDR5 메모리 공급 가격을 100% 이상 인상하며 사실상 20달러 선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 소식통 ‘Jukan’에 따르면, 이러한 급격한 인상은 삼성 측이 다운스트림 고객사들에게 “재고가 없다”며 심각한 공급 부족을 통보한 직후 이루어졌다. 대만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현물 시장 가격은 계약 가격보다 훨씬 가파르게 치솟고 있으며, 공급 완화에 대한 기대와 달리 12월 들어 DDR5 현물 가격 상승세는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DDR4 가격 또한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제품과 데이터 센터 수요 대응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6년 1분기에 메모리 가격이 다시 한번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 세계 완제품 제조사들에게 상당한 원가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며, 부품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OEM 업체들이 가격 인상분을 흡수할 여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폰 사양의 역주행: 4GB 램의 귀환?
치솟는 D램 가격은 당장 차세대 스마트폰 제품 기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제조사들이 비용 통제를 위해 메모리 사양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엔트리급 모델의 경우 2026년에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던 4GB 램이 다시 기본 사양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급기 및 플래그십 모델 역시 메모리 용량 탑재에 보수적인 접근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양 축소는 소비자의 체감 가치를 떨어뜨리고 기기 교체 주기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부 제조사는 줄어든 내부 저장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마이크로SD 카드 슬롯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마진율을 자랑하는 애플조차 예외는 아니다. 2026년 초 아이폰 제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애플은 구형 모델의 가격 인하 정책을 재검토하거나 전반적인 가격 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안드로이드 진영 또한 중저가 시장에서 마케팅 핵심 요소였던 메모리 용량을 줄이거나 기존 모델의 수명 주기를 조정하는 등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섰다.
PC 시장으로 번진 불똥, 델(Dell) 가격 인상 예고
PC 시장 역시 가격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온보드 메모리(Soldered memory)를 사용하여 원가 절감 옵션이 제한적인 초슬림 노트북 제품군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델(Dell)은 메모리 가격 상승을 이유로 12월 17일부터 상업용 PC 제품의 가격을 10%에서 최대 30%까지 인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소비자용 노트북은 기존 재고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모리 부품 덕분에 당장은 가격 방어가 가능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인 가격 변동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조사들이 라인업을 재정비하는 ‘컴퓨텍스 2026’ 시점인 2026년 2분기경에는 PC 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기 하드웨어 사이클에서 ‘더 비싼 가격에 더 낮은 사양’의 제품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 SATA SSD 단종 루머 일축… “사실무근”
메모리 시장의 혼란 속에 삼성전자가 SATA SSD 사업을 철수할 것이라는 루머가 확산되었으나, 삼성 측은 이를 공식 부인했다. 당초 유튜브 채널 ‘Moore’s Law Is Dead’는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이 내년 1월 중 SATA SSD 생산 중단을 발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대변인은 Wccftech에 보낸 성명을 통해 “삼성의 SATA 및 기타 SSD 제품을 단계적으로 단종시킨다는 루머는 거짓”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삼성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용 SSD 시장의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최근 마이크론(Micron)이 소비자용 브랜드인 ‘크루셜(Crucial)’ 라인업(DRAM, SSD 포함)을 내년 초 정리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비록 삼성의 SATA SSD가 당장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가격 급등과 공급 제약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AI 블랙홀이 삼킨 메모리 시장, 전망은 불투명
현재의 메모리 대란은 급격히 팽창하는 인공지능(AI) 산업이 시스템 메모리와 스토리지 재고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협력해 ‘AI 메가 팩토리’를 구축하는 등 기업의 역량이 AI 분야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소비자용 SATA SSD 등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술적으로도 SATA 인터페이스는 이론적 최고 속도가 550MB/s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어, 고성능 낸드 플래시의 성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 NVMe SSD는 생산 단가가 낮으면서도 속도 제한이 없어 제조사 수익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Moore’s Law Is Dead’는 2027년경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앱이 대중화되면서 메모리 수요가 다시 소비자용 기기로 분산될 때까지, 즉 2026년 말까지는 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AI 산업이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현재의 투자 거품이 붕괴될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일부 분석가는 현재의 AI 버블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4배 규모라고 경고하고 있어, 만약 이 거품이 꺼진다면 메모리 부족 사태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