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내로 향하는 택시 안, 차창 밖의 풍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빠르게 오르는 미터기였다. 약 40분 거리의 호텔까지 8,000엔, 한화로 약 7만 원이 넘는 요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취재진이 머무른 뉴 오타니 호텔 32층 객실에서는 아카사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1990년대 일본 경제의 버블 시대에 졸부들이 모여 수백만 엔을 한순간에 써버리던 고급 클럽들이 몰려 있던 지역이다.
이번 일본 방문은 혼다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본부장 나카조노 코지 실장과의 저녁 식사로 시작됐다. 그는 입사 이후 아시아 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정 대표와의 인터뷰 이후, 네 달이 지난 11월 회식 자리에서 혼다의 자동차 박물관과 F1 서킷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기자가 “한 번쯤 F1 서킷을 꼭 보고 싶다”는 인사를 건넨 지 이틀 만에, 정교하게 시간 단위로 짜인 방문 일정 엑셀 파일이 메일함에 도착했다. 글로벌 기업다운 신속하고 치밀한 대응이었다.
아카사카의 해산물 전문점에서 만난 혼다의 관계자는 나카조노 실장을 포함해 총 4명. 이들은 대화의 첫머리를 늘 “혼다 소이치로는…”으로 시작했다. 창립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느껴졌다.
혼다와 도요타를 비교하는 질문에 대해, 나카조노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혼다 소이치로는 외국 기술과의 제휴보다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1948년 보조 엔진 자전거로 출발한 혼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제조사이자 자동차, 나아가 항공기 제조사로 성장했습니다. 저희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이 혼다의 원동력이죠. 도요타는 비즈니스 중심이고 모든 직원이 ‘카이젠’에 매달립니다. 그런 점에서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와의 대화 중, 그는 실적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혼다의 철학을 강조했다.
“실적은 물론 중요하지만, 숫자에만 집착하면 기업의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혼다 소이치로의 꿈은 사람들이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만드는 기쁨, 파는 기쁨, 사는 기쁨’을 고객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념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이죠.”
그는 이어 창업자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혼다 소이치로는 사무실보다 현장을 중시했던 기술자였습니다. 어느 날 공장을 돌던 중, 한 신입사원이 그의 존재를 모르고 ‘방해하지 마시고 나가 주세요’라고 말했죠. 그는 곧바로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런 태도는 직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혼다의 CEO를 포함한 경영진 다섯 명 모두 이공계 출신이며, 혼다 본사는 전통적으로 사무실을 나누지 않는 오픈 구조다. 나카조노 실장 또한 파티션 없이 긴 테이블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 혼다의 정유영 대표도 마찬가지로 별도 집무실 없이 공동 사무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혼다는 정식 명칭이 ‘혼다기연공업’으로, 기술을 중시하는 전통 덕분에 일본 명문대 공대생들의 입사 선호도 1~2위를 다툰다. 그러나 혼다 소이치로는 학력보다는 실력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는 ‘돌도 다이아몬드도 각자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학벌을 중시할 때, 혼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졸 출신의 오야마 매니지먼트 CEO가 최고 경영진까지 오른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저 역시 명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능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혼다의 정신은 단지 성과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기술에 대한 열정과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혼다 내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