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학생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면서 교육 현장의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제 교육자와 학교 리더들은 신기술에 저항하기보다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합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2025년 말, 전 세계 기술의 중심지인 리스본과 미국의 교육 현장 곳곳에서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기술 전문가와 교육 리더들은 입을 모아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교육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과 기계의 협업,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부상
지난 2025년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포르투갈 리스본 MEO 아레나에서 열린 ‘웹 서밋(Web Summit)’은 이러한 변화를 확인하는 거대한 담론의 장이었다. 157개국 7만여 명의 기술 전문가가 집결한 이 행사에서 스쿼럴 Ai(Squirrel Ai Learning)의 공동 창립자 졸린 리량(Joleen Liang) 박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타임(TIME) 등 글로벌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래 교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리량 박사는 ‘인간 대 기계: 누가 내일의 교실을 소유하는가?’라는 주제의 포럼에서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AI의 궁극적인 가치는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반복적인 업무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영감, 공감, 창의성과 같은 인간 고유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술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스쿼럴 Ai가 선보인 ‘멀티모달 지능형 적응 학습 시스템’은 이러한 철학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이 시스템은 4,300만 명 이상의 학생 데이터와 200억 건이 넘는 학습 행동 분석을 기반으로 학생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단순히 지식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학습자가 왜 특정 지점에서 막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가장 적절한 지원을 즉각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경계 없는 교실’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다.
취약 계층을 위한 맞춤형 학습 프로필과 ‘생산적인 고군분투’
글로벌 무대에서 거시적인 담론이 오가는 동안,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교육 연구자와 테크 기업가들은 AI가 어떻게 학습 격차를 줄이고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주목했다.
비영리 교육 단체 ‘디지털 프로미스(Digital Promise)’의 옌다 프라도 연구원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롭게 부상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녀는 빈곤층, 다문화 가정,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 등 취약 계층의 학습 격차 해소에 집중하고 있다. 핵심은 정교한 ‘학습자 프로필’ 개발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이나 학습 장애가 있는 학생의 프로필을 분석해, AI 에이전트가 각 학생의 구체적인 필요에 맞춰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M7E AI의 공동 창립자이자 하버드 교육 기업가 펠로우인 케다르 스리다르는 이공계(STEM) 교육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 수학 커리큘럼은 종종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AI를 통해 이를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변환하는 식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학생들의 불필요한 고생을 덜어주는 대신 ‘생산적인 고군분투(productive struggle)’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핵심 지식을 쌓고, 질문을 던지며, 심지어 AI가 내놓은 답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려는 의도다.
‘마이크로 스쿨’ 실험: AI가 주도하는 수업의 가능성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엘리자베스 시티-패스쿼탱크 공립학교 교육감인 키스 파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감한 현장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지역 경제 침체로 인한 자원 및 교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마이크로 스쿨’이라는 혁신 모델을 도입했다.
현재 5~6학년 학생 25명과 교사 3명으로 구성된 이 작은 학교는 AI 실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교사들은 자체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할 자율성을 가지며, AI가 보조 튜터 역할을 넘어 하루 일과 중 일부 시간 동안 직접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파커 교육감은 교사 3명이 5학년부터 8학년까지 6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개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AI가 도입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바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교육이다. 학생들이 AI 시스템으로부터 정말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영어 수업 시간에 읽고 있는 소설의 캐릭터 가이드를 생성하거나, 챗봇에게 등장인물의 페르소나를 부여해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식이다. 질문의 방식에 따라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은 지금 K-12 교육의 거대한 혁명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기술은 물리적, 시간적 경계를 허물며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된 학습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과정의 설계자이자 촉진자로 변모하고 있다. 전 세계 교육 전문가들의 시선은 이제 기술 자체의 우수성을 넘어,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력하여 교육의 본질을 지켜나갈 것인지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