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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석빙고의 장빙제유래
뉴스일자: 2009-01-15

 

 

<장빙제(藏氷祭)의 의미>

藏氷祭는 얼음보관과 음기(陰氣)의 보존을 통해 우주의 질서가 잘 이루어지도록 비는 제사입니다. 이는 석빙고에 얼음을 넣기 전에 물과 비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지내는 국가적인 제사로 4배를 향하며 진실도와 축 등이 국가의전 책자인 「국조오례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빙제는 이 기록에 근거한 양식으로 진행됩니다. 안동석빙고는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은어 저장고였으므로 사한제(司寒祭)에 의거한 제사를 지내며 제관은 부사로 진행되었습니다.

 

<석빙고 장빙제(藏氷祭) 재연행사의 의의>

안동석빙고보존회는 지난 2002년 처음 장빙제의 옛 모습을 재연한 이래 매년 소한(小寒)과 대한(大寒) 절기 사이 가장 추울 때 강얼음을 채취하고(採氷), 이 얼음을 석빙고로 옮겨(運氷) 재는(藏氷) 행사를 열어왔습니다. 이는 그 옛날 엄동설한에 빙고부역에 시달렸던 강촌 주민들의 애환을 되돌아보고 한여름까지 얼음을 석빙고에 저장해 여름철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여 먹은 조상의 슬기를 되돌아보자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빙고부역의 애환>

빙고(氷庫)는 조선시대 얼음을 관리하던 관청으로 「대전회통호전요부조」의 기록을 보면 방역빙미(防役氷米)를 받고 부역을 면해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혜택을 입은 백성은 극히 일부분이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채빙은 국가부역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대상이 주로 군인들과 강촌 주민들이었습니다. 서울에는 동빙고, 서빙고, 내빙고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석빙고가 있었고, 동빙고에는 10명, 서빙고에는 40명의 전임 노역군이 있어 이들에게 채빙 노역의 결과 1결의 토지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에 채빙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 군기사 등의 군인들과 강촌의 주민들 또는 노비와 역모의 죄가 있는 사람들, 때로는 서북지역의 얼음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까지 동원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채빙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채빙의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강촌에는 겨울만 되면 빙고부역을 피해 멀리 달아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겨울과부라는 뜻으로 ‘빙고과부’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때로 대신 노역을 해주고 돈을 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채빙은 소한과 대한 사이에 주로 이루어졌는데 만약 이 때 얼음이 12cm 이상 얼지 않으면 며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빙고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은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고, 빙판에 미끄러져 찰과상을 입고 심지어는 골절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채빙은 얼음 위에 새끼줄을 치며 시작됩니다. 먼저 얼음을 가로 70~80cm 세로 100cm 이상 되도록 일정한 규격으로 맞추어 톱으로 썰어 물 위에 띄우고 이를 다시 꺼내어 우마차에 싣고 석빙고로 향합니다. 무거운 것은 얼음의 무게가 약 130kg 이상 되기 때문에 몇 사람이 들어야만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채빙된 얼음은 다시 석빙고에서 볏짚과 쌀겨 등으로 포장되어 층층이 쌓았습니다. 이러한 얼음을 보통 1만개 이상 13만개까지 쌓았다고 하니 이 노역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역의 폐단을 막고자 많은 뜻있는 관리들이 노역의 어려움을 상소하였고, 정약용은 얼음을 보다 쉽게 채취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자신의 저서에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석빙고 장빙과정-사한제(司寒祭)>

석빙고에 얼음을 저장하는 과정은 기한제(겨울날씨가 특별히 따뜻할 경우에 시행), 채빙, 운빙, 장빙제, 장빙의 순서로 이루어지고 개빙제(開氷祭)를 지낸 후 3월부터 얼음을 사용하게 됩니다.

 

■ 기한제(祁寒祭) - 겨울 더위를 물리침

사한제는 겨울에 날씨가 춥지 않아 농사에 지장을 주고 얼음이 얼지 않았을 때 임금이 제를 지내 겨울 더위를 물리쳤다는 기록에 근거해 기한제를 지냅니다.(성종6년, 영조45년)

 

■ 채빙(採氷) - 얼음을 채취함

채빙 날짜는 논의하여 추위가 심해질 때를 채택하였으며, 추워지지 않으면 여러 날을 기다렸습니다. 채빙은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여러 날 진행되었습니다.

 

<안동석빙고의 신비>

안동지역의 석빙고는 모두 2기가 있었으며 목조로 된 빙고를 포함하면 이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는 안동시 도산면에 있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현재 위치인 안동시립민속박물관으로 이건한 것입니다.

 

이 석빙고는 원래 영조 13년인 1737년에 당시 예안현감으로 부임한 이매신이 당시 목조빙고를 개축하여 만든 것입니다. 목조빙고는 삼한시대부터 활용되어 온 것으로 이매신은 이 목조빙고를 매년 관리함에 많은 부역이 들어가는 것을 염려하여 의지를 내어 고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목조빙고를 석빙고로 재건축된 예는 영조연간에 많이 보여 이 당시에 유행한 일들이 아닌가 짐작되며 이는 그만큼 얼음이 실생활에 많이 적용된 증거라고 여겨집니다.

 

이매신이 석빙고로 개축한 또 다른 사연은 바로 안동 낙동강 은어를 임금님께 진상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름 임금님께 진상한 공물 중에는 지역 특산물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중 안동지역 낙동강 은어 30미도 함께 목록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음력 7월 낙동강 은어는 산란하기 전 시기이며 동시에 낙동강의 험한 물살을 헤치고 올라온 고기들이라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매신은 이러한 은어를 싱싱하게 임금님께 진상할 목적을 가지고 석빙고를 개축한 것입니다. 이렇게 축조된 석빙고는 다른 지역 석빙고와 달리 측면이 동측으로 길게 나 있고 내부 출입을 위한 계단을 두었습니다. 내부는 길이 12.5cm 폭 5.9의 장방구로 입구와 맞은편의 벽은 수직에 가깝게 축조되어 있습니다. 홍예를 지탱해 주는 양측벽도 이와 비슷합니다. 즉 수직에 가깝게 약 2.6cm 쌓아 올린 다음 반원형의 홍예를 들어 올렸으며 홍예보는 4개소로 가공된 화강암 장대석으로 폭 약 1.2cm - 1.3cm 정도로 구축하였습니다. 환기구 3개소를 설치하여 빙실내부의 공기를 유통시키고 온도를 조절하였습니다.

 

<석빙고의 역사>

빙고(氷庫)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조선말기 양빙고제가 없어질 때까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실생활에 이용되어 왔습니다. 옛날에는 능음(凌陰)이라고 하였는데 겨울에 얼음을 채집해 두었다가 여름에 사용할 수 있게 한 시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일정기간 얼음을 잘 보관하기 위한 첨단기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빙고는 시대별, 지역별 형식상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얼음을 효과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독특한 구조적 특징을 갖고 발전해 왔습니다.

 

중국의 경우 이미 전국시대에 쓰인 ⌜예기(禮記)⌟에 이와 비슷한 기록이 보이는데,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쓰는 집을 ‘난빙지가(奻氷之家)’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장빙제도(藏氷制度)의 기록은 ⌜삼국사기⌟ 제4권의 ⌜신라본기⌟에 소개되어 있는데 지증왕 6년(505)에 “겨울에 해당 관서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토록 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는 국가에서 정식으로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으며,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였다가 이듬에 여름에 사용한 예가 적어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려주는 기록입니다. 이러한 장빙제는 조선말기 광무2년(1898) 양빙고가 폐지될 때까지 계승되어 왔습니다.

 

신라 지증왕 6년에 장빙법이 제정되고 내성에 소속된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을 두고 빙고를 관리하였습니다. 그러나 관청에서 빙고를 관리 하였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상세한 제도와 운영 실태는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 개성은 물론 평양에도 내빙고와 외빙고가 설치되었습니다. 단종 2년(1036)에는 입하절(立夏節)에 얼음을 진상케 한 기록이 보이고, 문종 3년(1049)에는 반빙제도(反氷制度)가 정해져 매년 6월에서 입추까지 최고급 관리에게는 3일에 두 차례, 좌우북시, 육부의 상서 등 고급관리 에게는 7일에 한차례씩 얼음을 나눠주어 영구한 제도로 삼았음을 보여줍니다. 얼음을 나눠주는 반빙간은 해마다 음력 6월부터 입추(立秋)까지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5년(1396)에 중앙에서 예조의 속아문(屬衙門)이 직접 관리하는 동빙고(凍氷庫), 서빙고(西氷庫)의 양빙고를 설치, 관리하는 관청을 두어 얼음을 관리하였고, 창덕궁 안에 내빙고(內氷庫)를 두어 궁궐부엌의 얼음수요를 맡았습니다. 중앙이나 지방관의 관용으로만 빙고제도를 운영한 것만이 아니고 일부 계층이기는 하나 개인도 간단한 저장시설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구조는 알 수가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빙고의 얼음 저장과 반출은 예조에 소속된 종5품 아문인 ‘빙고’(氷庫)에서 관장했으나 동빙고에 얼음을 저장할 때는 제사를 맡아보는 봉상시(봉상시)의 관원도 감독했으며 그 얼음은 왕실의 제사를 지낼 때만 쓰였습니다. 이 때문에 좀 더 깨끗한 얼음을 얻기 위하여 저자도(楮子圖), 즉 지금의 뚝섬까지 나가 얼음을 채취하게 되니 자연 빙고도 당시로는 교통이 불편한 한강 상류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동서 빙고는 나무를 재료로 한 목빙고였으며, 갈대, 솔가지, 짚 등을 이용하여 얼음을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매년 얼음을 저장할 때마다 보수를 해야 했고 얼음도 빨리 녹아 아무래도 비효율적이었으며, 보수할 경우 그 비용과 노동력을 경기지방 백성들이 부담해야했으므로 민폐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세종 2년(1420)에는 동서 양 빙고가 석빙고로 개조되었으며 이후 이것이 빙고의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고관들의 집에는 하사 받은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빙고가 있었을 것이고, 18세기 영. 정조 이후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한강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 생선 보관용 얼음을 공급하던 사빙고(私氷庫)가 존재 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서 만든 빙고는 현재까지는 전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다만 국가기관 운영하던 관영의 빙고, 그것도 틀을 이용하여 축조한 석빙고(石氷庫)만이 몇몇 남아 있어 이를 통해 그 형태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현존하는 석빙고는 대개 18세기 초 영조대의 것이 남아있습니다. 석빙고 주변에는 대부분 석비(石碑)가 건립되어 있어 석빙고 건립과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현존 석빙고는 영남지역에만 남아 있고, 영조연간에 축조되거나 개축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석빙고로는 경주석빙고(보물 66호), 안동석빙고(보물 305호), 창녕석빙고(보물 310호), 현풍석빙고(보물673호), 영산석빙고(사적 169호)등이 있고, 북한지역에는 해주석빙고가 있습니다.

 

<석빙고와 생활문화>

미국 여성의사의 조선기행문이 미국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의 내용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의 문화에 대한 예찬이 그 것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조선에서는 한여름에도 얼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의사이자 선교사로 조선을 방문하였는데 한국인을 치료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명성황후로부터 점심초대를 받았고 점심을 얻어먹고 후식으로 화채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채에는 얼음이 동동 떠있었습니다. 이때가 음력 7월이었고 지금으로 보면 8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으니 미국인 여의사가 놀란 것은 당연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명성황후에게 얼음에 대하여 물으니 황후는 담담하게 조선에서는 일상적으로 여름에도 얼음을 즐긴다는 말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얼음을 사시사철 즐긴 민족은 우리민족이 유일하다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예기」 등에 얼음과 관련된 제사 등의 자료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를 실생활에 적용시킨 민족은 우리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우식기자 (bbiko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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